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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르는 집을 고치는 건 낭비일까요

안 오르는 집을 고치는 건 낭비일까요

"남들의 부동산 지표 대신, 내 눈앞의 공간에 제대로 투자하는 기준"

작년에 한 현장의 인테리어 공사를 위한 미팅을 하던 중 클라이언트 분이 나직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남편이 공사를 내내 반대했어요. 어차피 안 오를 집인데 왜 수 천만 원씩 낭비 하냐고..."

공사는 근사하게 잘 끝났고 두 분 모두 결과에 대단히 만족해 하셨지만, 그 전에 했던 그 한마디가 문득 근래 더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내가 매일 누워 자는 집을 가꾸는 일에도 요즘처럼 민감한 시세라는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하는 걸까?' 싶었거든요.

사실 뜨는 뉴스를 보면 그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아파트 가격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14배 가까이 벌어졌습니다.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가 9% 가까이 오르는 동안, 비 수도권은 오히려 1% 남짓 떨어졌어요. 심지어 서울 안에서도 일부 지역만 수요가 몰리면서 내부 격차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앉아서 억 씩 오른다는데..." 문득 밀려오는 서글픔

매일 뉴스에서는 어디 아파트가 신 고가를 찍었느냐, 자산 격차가 몇 배로 벌어졌느냐 하는 수치들이 쏟아집니다. 나만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고, 내 선택이 틀렸던 건 아닌가 싶어 괜히 마음이 쓸쓸해지곤 하신 경험 들 솔직히 있으시죠. 저도 사실 같은 마음에 흔들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자산이 오르는 집을 고칠 때는 '미래를 위한 당연한 투자' 처럼 말하면서, 집값이 정체 된 동네를 고치면 '괜한 돈 낭비' 라고 쉽게 치부해 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시선은 남이 아니라, 스스로가 먼저 갈등을 불러 일으켜 마음을 죄어오곤 합니다.

하지만 매일 그 집으로 퇴근하고, 그 공간에서 가족과 밥을 먹고, 주말에 지친 몸을 누이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남들의 시선이나 집값 지표에 맞춰 내 일상의 가치까지 평가 절하 할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우리가 수 천만 원을 들여 집을 고치는 진짜 이유

현장에서 공사를 결정하는 고객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집값을 올리기 위해 공사한다는 분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짜 집을 바꾸고 싶어 하는 순간은  소소한 일상에서 나름의 불편함이 쌓이고 똑같은 공간에서 사는 지겨움이 때론 함께 찾아옵니다. 

  •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 천장 한가운데서 눈으로 바로 꽂히는 직부 조명 빛 때문에 눈이 피곤해지곤 하거든요."
  • "휴일에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기저기 드러난 살림살이와 낡은 마감재 때문에 거슬리고 마음이 자꾸 산만해져서요."
  • "집 안 곳곳이 복잡한 생활 감이 수납 부족으로 드러나 있고, 단 한 평이라도 혼자 조용히 숨 돌릴 자리가 필요해서요."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재편성도 필요하고, 일반적으로 십 년 이상 거주 했을 때 이젠 인테리어를 새로 해야 한다는 결심을 보통 하게 됩니다. 어쩌면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둘러싸인 이 시대에, 집을 고치는 일은 사실 남은 통제 권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리모델링 시장 자체는 꾸준히 커지고 있습니다. 2022년 리모델링 시장은 17.8조 원까지 성장했고, 2030년에는 29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집값이 오르든 말든, 사람들은 계속 집을 고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계 경제나 부동산 정책처럼 거대한 일들은 우리가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내가 스위치를 켜는 조명의 따스한 조도와, 손잡이를 잡을 때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 그리고 내 눈에 느껴지는 깔끔한 벽면의 결 만큼은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지출 3가지 기준 체크 포인트

그렇다고 해서 "안 오르는 집이니 마음대로 돈을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중에 마음이 쓰라리지 않으려면, 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망설여지는 공사가 있다면 다음 세 가지를 가만히 물어보세요. 

 💡 집의 기본 성능을 지켜주는 공사인가요?  이건 '자산형 지출'입니다.

  • 창호 (새시) 교체, 단열 보강, 노후 배관 교체처럼 집의 기본 기능을 끌어올리는 디폴트 값 지출입니다. 이건 집값과 상관없이 집의 수명을 늘려주고 실제 매매 때도 가치를 인정받는 가장 안전한 지출입니다.

 💡매일 내 피부와 시선에 직접 닿나요? 이건 '생활형 지출'입니다.

  • 매일 몸에 닿는 손잡이, 수전, 자주 쓰는 조명, 매일 바닥에 닿는 타일 이나 마감재 입니다. 부동산 시세 표에는 안 찍혀도, 내 매일의 기분과 컨디션에는 100% 즉각적인 효과를 줍니다.

 💡 유행에 휩쓸린 일시적인 기분인가요? 5년 뒤에도 같은 만족을 줄 것인가? 

  • 요즘 인스타 그램에서 유행한다고 해서 덜컥 고른 과감한 컬러나 강한 패턴은 2~3년만 지나도 쉽게 질립니다. 반면 톤 다운된 잔잔한 무드와 정갈한 자재는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깊이를 줍니다.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1번(기본 성능)과 2번(매일 닿는 감촉)이 만나는 지점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배분은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겹치는 지점을 먼저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후 배관 교체는 자산 형이면서 동시에 매일의 수압과 수질을 바꾸는 삶의 소소한 질을 높이는 생활 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부터 시작하면, 어떤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는 잘 쓴 지출이 됩니다. 다만, 모든 지출이 같은 값어치를 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 당신의 집에서 가장 마음 편한 곳은 어디인가요?

공간스타일리스트로서 제가 해드리는 일은 무조건 돈을 쓰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헛된 유행에 돈을 쓰지 않도록 가려드리고, 독자 분이 매일 머무는 자리에서 진짜 평온함을 찾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래서 안 오르는 집을 고치는 건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다만 아무 기준 없이 고치는 건, 오르는 집이든 아니든 낭비가 맞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집값 뉴스에 마음 쓰지 마시고, 그동안 눈에 걸렸던 작은 조명 하나, 미뤄두었던 어두웠던 구석의 정리부터 차분히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 소소한 변화 만으로도 퇴근 길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소비를 정당화해주는 게 아닙니다. 어떤 지출이 실제로 생활을 바꾸고, 어떤 지출이 그저 잠깐의 기분에 그치는 지를 가려드리는 일이에요.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은 변호가 아니라 분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그 집이 오르는 집인지 아닌 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집값 뉴스에 흔들리지 않고도 매일의 삶을 내 공간에서 만족해 하며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으면 공감이  되는 글" : 필코노미로 바꾼 4050 집 소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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